반려동물 진료기록 의무화 속내… 투명성 요구와 수의계 반발의 충돌

반려동물 양육 가구가 폭증하며 치료비 부담이 커진 가운데, 동물병원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교부를 의무화하는 수의사법 개정안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하며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돌입했습니다. 그동안 수의사에게 진료부 작성 의무만 있고 보호자의 열람 권리는 보장되지 않아 발생했던 입법 공백이 해소될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하는 수의사 단체와 전국 수의과대학 학생들이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열고 총력 투쟁을 선포하면서 제도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진료기록 발급 거부와 잇따르는 피해 사례

현행 수의사법은 진단서나 처방전 등 일부 증명서에만 발급 의무를 두고 있어, 수술 후 반려동물이 숨지거나 의료사고가 의심되어도 보호자가 진료기록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 중성화 수술 후 복강 내 잔류한 거즈로 인해 장 유착 판정을 받고 치료받다 숨진 푸들 ‘민희’의 사례를 비롯해 다수의 보호자가 진료부 사본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습니다.
  • 진료기록을 얻기 위해 보호자가 민원을 제기하거나 법원에 증거보전 신청을 거쳐 법원 명령까지 받아내도 동물병원이 제출을 거부하는 사례가 빈발했습니다.
  • 사람이 이용하는 의료기관은 환자의 진료기록 열람 요구를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는 것과 달리, 동물 보호자는 기록 하나를 확보하기 위해 소송에 준하는 시간과 비용을 소모해야 했습니다.

이 같은 문제로 지난 3월 진료기록 교부권 미보장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상임위를 통과한 개정안은 분쟁 해결을 목적으로 할 때 보호자가 진료기록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발급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일상적인 후속 진료나 펫보험 청구 등 분쟁 외의 상황까지 권리가 확대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됩니다.

진료비 개별 공개 확대와 수의계의 전면 반발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또 다른 핵심 정책인 동물병원 진료비 개별 공개 역시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기존 지역별 평균·최저·최고값 통계 제공 방식에서 개별 병원 단위로 공개가 확대되는 추세이나, 수의계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 대한수의사회와 전국 10개 수의대 재학생 2000여 명은 국회 앞에서 ‘동물의료 말살정책 저지 투쟁 선포식’을 개최하고 실질적인 협의 없는 제도 추진 중단을 촉구했습니다.
  • 수의사회는 체중과 마취 여부 등에 따라 달라지는 진료비를 단순 비교하도록 강제하면 보호자에게 오인 정보를 제공하게 되며 소규모 1인 병원의 인프라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 진료기록 공개와 농장동물 자가진료 관행이 맞물릴 경우 수의사 진료 없는 무자격 의약품 투약이 성행해 항생제 내성 심화 및 축산물 잔류물질 증가 등 공중보건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반려동물 치료비가 급증하고 의료사고 피해 불만이 이어지면서 정보 공개와 투명성 제고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규제 대상인 수의계가 제기하는 의약품 유통 체계 개선, 공적 동물의료보험 도입 등 선결과제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보완책 마련이 선행되지 않을 경우 현장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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